오늘은 나를 알아보는 30가지 질문들에 대한 QnA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사실 이번 방학 공모전 목표도 끝났고, 방학기간동안 진행 될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의 불성실로 인해 사실상 유야무야 되고 있지만 이건 다음주부터 멱살잡고 끌고 갈것이기에 상관없다. 나 혼자서도 진행 해도 될 프로젝트였었고, 인원채우기용이었으니,,,(사실 꽤나 팀원들을 믿고 있었지만)
그리하여 이번주 리뷰는 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더불어 요즘 빠진 노래와 함께 이 글을 써보려고 한다.
Beautiful Girl-스컬 & 하하
Who Am I?
Q1.가치 있지만 불확실한 것에 많은 것을 걸 수 있나?
어떤 가치인지, 어떤 조건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가치"란 것은 굉장히 상대적이다.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나에게도 수많은 가치들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가치와
그렇지 못한 가치로 나뉘기도 한다.
하지만 가치를 얻기위해 큰 리스크를 지는 것은 나의 성향이 아니다.
A라는 조건을 투자하여, B라는 가치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A라는 조건을 내어줄 수 있다.
하지만 A라는 조건을 투자하더라도 B를 얻기에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면,
우선 (B가 나에게 매력적이라는 가정하에) A만으로 가지지 못하는 이유부터 조사할 것 같다.
어떤 다른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지 철저히 자료조사를 하고, 로드맵을 작성하고 기꺼이
B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A +알파의 조건이 아닌 알파값이 단순한 확률에 의거한다면
나는 B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 A라는 조건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확률은 보기좋은 도박사의 오류일뿐이다. 이 세상엔 어떠한 가치를 얻기 위한 분명한 명제를 존재한다.
즉 정리하자면, 확률을 통해 결정되는 사안이라면 투자하지 않는다. 이런 행위는 게임속에만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아마 마지막 정리문이 이 질문의 핵심과 맞는 답인 것 같다.
Q2.내일을 알 수 없으면, 오늘도 행복할 수 없을까?
이 질문은 나에게 있어 난해하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단순히, 나의 일이 내가 세운 계획대로 진행되길 바라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계획이 틀어져도, 틀어진 상황에 맞춰 새롭게 계획을 세우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계획"이란것은 단순히 준비이지 내일을 예견하는 수정 구슬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내일 일어날 일들을 예측 할 수 있을까,
평소 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날 수도 있고, 더 늦게 일어날 수도, 컨디션이 좋을 수도, 안좋을 수도 있다.
하물며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우리가 모두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당장 30분 뒤의 일도 예측하지 못한다.
내일을 알 수 없다하여 오늘의 행복을 져버리는 모자란 행동을 하지 않길 바란다.
Q3.나의 불안을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로 삼진 않나?
이번 질문은 조금 신중히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평소 불안 정도가 높은 정도이다.
내가 원하는 일의 퀄리티가 있는데, 내가 아닌 타의에 의해 그 퀄리티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이 외에도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들에 대한 불안함 등
상당히 불안함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그렇기에 한번 집에 나설 때에도 어떤 날은 두 세번 다시 집에 되 돌아가
몇번이고 확인한 뒤 겨우 집을 나서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불안증세는 연애나 사랑에 있어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내가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함에 있어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주고, 온전히 그 자체로
좋아하고 사랑해야하는 것을 머리 속에서는 알고 있으나,
마음 속에서는 늘 불안이 한켠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까지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자 그럼 나느 나의 불안을 이유로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가? 그렇진 않다.
사실 몇번이고 불안함을 대가로 연애를 해본적이 있고, 누군가를 사랑해본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기대치가, 퀼리티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 록 불안함이 많은 편이기에,
나의 불안이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무한히 노력 할 뿐이다.
즉 나에게 있어 사랑이란, 나의 불안을 온전히 나에게만 느끼게 하는 노력하는 것, 그런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에 불온전하다.
다른 모든 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호작용하고, 그 결과를 우리는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Q4.어떤 사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가?
부러워하는 유형은 있다. 보다 자유로이 사는 사람을 부러워 한다.
빌어먹을 자유로이 사는 성향은 나와 맞지 않다. 몇번이고 시도해봤지만, 나는 나의 계획 속의 일상의
안락함을 몇번이고 되느낄 뿐이었다.
그렇기에 자유로운 사람들을 부러워 한다. 그들만의 열정과 생활이
가끔 나에겐 힘이 되기도, 또 다른 창의적 사고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질투하는 사람의 유형은 크게 없다.
타인과 나의 능력 격차에 얶매여서 무엇을 하겠는가,
이 생각을 가지게 되기 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한 때 나는 자유로운 사람들을 질투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들을 질투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을 마냥 부러워 할 뿐이다.
질투란, 타인과 나의 격차에서 오는 부정적 감정이다.
부러움은 아마 긍정적 감정이겠지,
그리하여 애써 타인과의 능력차이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분명 저 사람 또한 나와 능력 격차가 있는 부분이 있을테니,
그것으로 존중하기로 했다.
Q5.너무 완벽하고 확실하려고 하진 않아?
변명의 여지도 없이 맞다.
우리는 불완벽하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단순 수식밖에 없다.
그럼에도 완벽을 동경하고, 확실함을 추구한다.
내가 A라는 일에 100%를 목표로 잡고 있다하자
여기서 80%는 내가 통제할 수 있고, 나의 의지로, 나의 능력으로, 어떻게든 끌어올릴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머지 20%의 부분은 내가 통제하지 못한 변인들이다.
예를 들어 A를 진행하기 위한 자금마련 방안이 타인의 손에 달려있다던가,
예기치못한 팀원 탈주, 팀원의 능력 부족, 사회 정서의 변화로 인한 A라는 가치에 대한 저하 등을 예시로 들수 있겠다.
이러한 20%를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하여 목표를 80%로 잡기에
우리 인간은 너무나도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목표가 80%라면 우리는 70, 아니 어쩌면 더 빠른 60% 부터 쉽게 안주할 수 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완벽을 꿈꾸는 것이다.
사실 80% 이후는 우리가 통제 할 수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가 통제 할 수 없는 것들에게 우리는 보여줘야 한다.
우린 할 수 있다고, 적어도 나는 가능하다고, 너만 오면 고
라는 것을 나머지 20%에게 증명해내야한다.
어쩌면 80보다 쌓기 어려운 20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완벽하고, 확실하려 한다.
Q6.흥미를 위해 너무 많은 걸 포기하고 있진 않나?
사실 이 질문지들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내가 접근하기엔 너무 어려운 것 같다.
"흥미"가 단순한 재미로 보는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주변에서도 이해를 하지 못한 경우가 종종있다.
자 "흥미"란 나에게 재밌는 것이다.
사람마다 흥미를 느끼는 분야도 다를 것이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쓸모를 남에게 증명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흥미가 끌리는 것인데
예를 들어 학과에서 과탑을 하거나, 남들도 무시못할 성취를 올린다거나,
공모전에서 수상하거나, 프로젝트를 잘 마루리 했다거나, 어떤 일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해내거나,
내가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는 등의 일들을 일 컫는다.
나의 일상은 나의 흥미로 꽤차있고, 내가 포기하는 건 인간관계, 약간의 건강 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흥미를 위해 너무 많은 걸 포기하고 있진 않다.
오히려 나의 흥미를 위해 많은 것을 쌓아올리는 중이다.
Q7.현재보다 미래에 훨씬 큰 가치를 두고 있는가?
조금 이 부분은 애매한 것 같다.
누구보다 현재를 살려고 하지만, 그 저편에는 늘 미래의 가능성이 머물러 있다.
현재의 일에 대해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해결 해나가는 다양한 도출 방안이 곧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반대로 말한다면, 미래를 위해 현재를 분석한다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를 위해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에게 이 질문은 모순이 넘쳐나는 질문이다.
"현재"란 무엇인가, 내가 인지하고 있는 시각의 전후 5분 정도면 현재라고 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인지하고 있는 시간의 5분 후는 미래일 것이다.
그럼 인지하고 있는 시간 5분 전은 현재인가? 이건 과거일 뿐이다.
이 질문자의 현재는 어느 기준인지 모르겠다만,
우리 인간은 시간의 편린에 살고 있다. 잠시 정신을 놓치면 과거가 되버리고, 그와 동시에
미래가 다가온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저 어딘가, 즉 현재 내가 인지하고 사고 할 수 있는 시각이라고 정의한다하더라도
현재와 미래에 가치를 다르게 두는 의미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미가 든다.
예를 들어 우리는 10분 뒤 80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A라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미래에 가치를 둔다고 하자.
그럼 현재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20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10분뒤는 80의 가치의 현재에 살고 있다. 그럼 이 때 미래의 가치는 20인가?
그건 또 아닐 것이다.
현재와 미래에 가치 차이를 두는 것이 이리도 모순 적이다.
우리는 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이는 현재와 미래에 더 큰 가치를 두고자하는 것이 아니다. 비중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우리가 올라가고 있는 한칸의 계단일 뿐이며, 미래는 다음에 내딛어야 할 계단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라는, 우리가 계단을 걸어온 높이만큼, 축적되어 있는 것이며, 현재란 그 계단을 오르는 것,
좀더 쉽게 말해 한칸의 계단을 올라가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렇게 말하는 난, 미래에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Q8.재미없다는 이유로 중요한 행위를 모른척 하는 건 없나?
중요한 행위를 하기 위해 필요한건 자극이면 충분하다.
"재미" 또한 한 개인에게 자극일 수 도 있지만,
포기 하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 하기 싫다. 라는 부정적 자극만으로도
그 일을 해야할 이유가 충분하다.
모른 척한 적은 없다.
Q9.사람 보는 눈이 없진 않아?
음 사람 보는 눈,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기대치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사실 내가 사람을 선택하고, 고르는 기준은 그러한 것이다.
이 사람이 중간에 포기하고 탈주할 가능성과 이 사람이 일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함이 분명해도
그 사람을 고르는 것은 그에 대한 리스크르르 책임지고 싶을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대부분 그사람의 인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Q10. 중요한 인생 과업을 모른 척 할 때도 있나?
아직 인생 과업이란 것을 마주쳐 본적이 없는 것 같다.
Q11.자신감과 거만함을 혼동하고 있진 않나?
이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자신감을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내비치지 않는다.
정녕 내가 자신있는 일이라면 말보단 행동으로 그들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나도 거만해질 떄가 있다. 특히나 내가 일을 잘 마무리 했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치켜세워줄 때
곧 거만해진 적이 몇번 있으나, 이는 성취감이라고 본다.
내가 스스로 거만하다는 행동을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면 거만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같이 축하해준다면
그건 성취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Q12.타인에게 무관심하면서 넌 관심받길 원하니?
사실 타인의 관심이 막 필요한 타입은 아니다.
관심을 가져준다면 고마운 일이고, 그렇지 않다한들 내가 그들에게
나 좀 봐달라고 소리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받고 싶을 때가 있는데, 바로 내가 누군갈 좋아하는 때이다.
하지만 이땐 그 누구보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쏟기에 질문의 명제는 저절로 해결 되게 된다.
Q13.모든 일에 네가 중심이어야 한다고 느끼니?
음 어느정도 그럴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획하고 내가 책임자라면 적어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타인의 의견과 주장이 일리가 있는 말이고 더 나은 가능성을 비춰볼 수 있다면,
내가 중심이 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주장을 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기꺼이 그 부속품이 되어 줄 것이다.
Q14.지나치게 목표가 높진 않니?
이와 관련해서는 위에 "완벽과 확실"에 대해 서술한 부분과
많이 유사할 것 같아 말을 줄인다.
나의 목표는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야 한다.
Q15.인정받기 위해 타인을 괴롭히고 있진 않나?
타인에게 인정받기에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가며 흔히 말하는 정치라는 것을 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인정"에 목말라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을 인식도 하지 못한 채 하고 있다는 것, 멍청해보인다.
"자기객관화"
이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이다.
나는 최대한 나를 객관적으로 볼려고 한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은 나의 성취경험들이다.
일이 끝나면 항상 나의 평가 기준으로 달성 여부를 평가하고, 미달 된 부분에선
이유 불문하고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여기고 그 부분을 보완해 나갈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나에겐 타인의 인정이 그닥 중요하게 작용하진 않다.
굳이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언갈 할 정도로 한가롭지 않다.
말을 줄인다.
Q16.남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을 챙기진 못하진 않나?
나는 나를 굉장히 못챙기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타인을 챙기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냥 가끔씩 무던히 일상이 버거울 때가 있다.
Q17.거절할 때 공포심이 드니?
이 부분에 대해선 두 부류로 나뉜다.
나를 잘알지 못하는 사람의 부탁과
나를 잘아는 사람들의 부탁
전자의 경우, 엄밀하게 나의 상황을 따져보고 힘들 것 같다 싶으면 쿨하게 거절한다.
미안하긴 해도 어쩌겠나
하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의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최대한 부탁을 들어주고자 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나에게 부탁한 것, 즉 부탁한 이는 아마 주변 지인중에 그 부탁을 들어줄 만한 사람이 없었을지도,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마지막 타자였을지도.
이사람은 자신이 힘들 때 나를 떠올렸다.
이 말은 즉 이 사람은 대충 내가 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거절하기 힘들다.
Q18.잘해야만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니?
그건 아니다. 하지만 잘해내고 사랑받지 않은 적은 없는 것 같다.
Q19. 오해 받는 다고 생각 될 떄 분노가 치미니?
보통 오해가 쌓이면 우선 대화를 먼저 청하는 편이다.
하지만 상대가 내가 오해라고 생각하는 것을 확실히 여기고 확증편향에 둘러댄 채로 나를
상대한다면 그냥 오해받길 선택하는 편이다.
이 사람은 소문에 의해 상대방에게 프레임을 씌울 정도로 가벼운 사람이구나 ,
평생 그에게 내 오해가 풀리질 않길 바란다.
Q20.상대를 소유하고 싶어지는 충동이 자주 있니?
연애할 떈 이러한 충동이 자주들지만,
그 외에는 없는 것 같다.
Q21.잘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꼭 잘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못한다면 남을 도울 수 없다.
이게 내 답이다.
Q22.인간관계를 지나치게 등한시 하진 않나?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나는 내 인간관계가 넓어지는 것에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나의 인간관계 내에 있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나는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이에 대비되게, 업무적 인맥이 넓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며
끊임없이 확장하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윈윈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Q23.타인에게 공감과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소홀하진 않나?
내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공감하고, 상대방이 원한다면 기꺼이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적재적소에 하는 것 뿐이지 소홀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Q24.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지 않은가?
오히려 나는 이타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룬 그 많은 것들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고,
최대한 모두를 위해 그 성과를 공유하는 편이다.
또, 결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진 않는 편이다. 그들이 손을 내민다면 기꺼이 그 손을 잡을 것이다.
Q25.성장할 수 없는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니?
성장할 수 없다.
이 말은 곧 나에게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내 한계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냥 한계를 깬다는 생각으로 임하겠지만.
나와 진짜 맞지 않는 일을 이악물고 9개월동안 한적이 있지만, 타인에게 민폐라는 결론만 얻었다.
나는 내가 성장하지 못하는 부분은 냉정하게 평가하는 부분이다.
나의 취약점이 될것이기에, 기꺼이 이를 감추기위해 무던히 노력할 것이다.
Q26.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대의명분이 있나?
나의 대의명분은 "지속성은 곧 기업의, 개인의 힘이다." 라는 대의를 만족시키기위해
아무리 힘들어서 매일 하는 그 어떠한 루틴을 지키고자하는 편이다.
그것이 설령 편두통이 오고,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늘 루틴을 지켜내며 항상 발전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Q27.누군가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 너무 애쓰진 않니?
No Pain, No Gain
누군가의 "기대"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의 기대를 받는 경우는 몇 가지 상황으로 정리 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나의 업무 능력에 대한 기대를 한다던가,
학생회 일을 하면서 다른 부장들이 나의 업무 능력을 기대한다던가
교수님께서 이번에도 나의 성적이 좋을 것으로 기대한다던가,
주변에서 나는 늘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던가,
이 정도 상황이 나온다.
나는 이 기대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이 기대는 나를 괴롭하게 한다. 고통스럽게 하며, 스트레스 받게 하고, 나를 짓누른다.
하지만, 위에 말했던것 처럼 이런 고통에서도 오는 베네핏이 있으라 색각하며 묵묵히
나의 "지속성"을 마음껏 보여주며 나아갈 뿐이다.
아마 이 상황에선 "No Pain, No Gain" 보다, "왕이 되려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 라는 표현이 더 올바를 수 있다.
나의 미래는 나에게 너무도 가혹한 것이기에, 루틴을 통해, 고통을 잊고, 어떤 힘듦도 일상적으로 만들 뿐이다.
우리는 물에 젖어 몸이 무거워져도, 단 한 발자국을 그 자그마한 한 발자국을 꾸준히 내딛어야 한다.
Q28.쉽게 타인을 폄하하지 않니?
적어도 이 질문은 미성년자 때라면 반성한다. 타인을 너무도 쉽게 폄하했으며, 상대방의 가치를 깎아 내린적도 많다.
하지만 그 모든 해우이들에 부질 없음을 느낀지 어연 5년이 되어간다.
그저 그들의 부족함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며, 그저, 그럴 수 있지라며 그냥 넘어가고자 하는 편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무능하다면 내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힘든것으로 그친다면,
그냥 그러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29.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있진 않니?
나는 나의 연약함을 광고하고 다닌다. 그 뭐라해도 내 스스로가 나태하단 것을 잘 안다.
굉장히 번아웃도 많이 오는 편이다. 가끔씩은 모든 걸 다 내려놔 버리고 싶기도 하며, 의지가 생기지 않기도 하고,
남들에겐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던 것들이, 내 스스로의 행동에도 그럴 수 있지 하며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미루어 짐작 해보건데, 나는 타인들보다 더 나태하며, 연약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성인이 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들을 직접 만들어
연약한 정신머리를 고쳐먹으려고 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 아닐 것 같다.
나는 의지가 부족하고, 많이 힘들어한다.
다만 주변에 티내지 않고 속으로 삭힐 뿐이다.
그들에겐 그러한 내 이미지가 더 잘어울릴테니까,
쉽게 무너지면 안되는 사람이니까,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잇으니까,
많은 것을 해내야만 하니까,
나의 힘듦을 굳이 타인이 알아주길 바라는가?
그러하여 얻는 것은 연민과 동정, 별 영양가 없는 위로를 얻고, 나의 약점을 내어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힘듦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몇번 만나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어차피 나의 힘듦은 그들에게 공감받지 못하니까
나는 내 자신을 내가 만든 틀에 끼워 넣기로 했다.
고통스럽고, 아플지라도 그저 지금은 묵묵히 견디고, 내 할일들을 끝내고.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한다.
나의 성공 명제 1번. "지속할 것"(어떤 일이 있더라도)
Q30. 불의나 부정을 보고 참는 것이 많이 고통스럽니?
나는 체내 에너지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이 에너지를 내 할일에 효율적으로 분배해서 사용하기도 바쁘고, 부족하다.
그렇기에 타인의 불의나 부정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것을 말하고 개선해보도록 여지를 가지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그냥 앞서 말한 것 처럼 그러려니 할 것이다.
우리 시장에는 분명 CCTV 이외에도 분명한 또 다른 눈이 지켜본다.
이 눈에는 사각 지대가 없으며, 늘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평가에 어떻게든
반영된다.
생각보다 하나의 행동은 구전을 통해 굉장히 쉽게 전파된다.
한마디로, 시장의 자생 능력을 믿기로 했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유토피아적이지 않다.
이 순간에도 이 세상에는 많은 불의와 부정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일에 일일히 분노를 느끼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 감정의 저편에 공허함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글을 읽는 사랑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대들이 생각하는 불의, 부정은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
당신이 행동하는 모든 것에 다른 사람이 그 행동을 불의나 부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애초에 절대적인 부정과 불의는 법에 규정이 되어 있는 행위이지 않나.
법에 규정이 없는 불의나 부정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혹여, 사건의 단편만 보고 불의를 느끼진 않났는가 검토해 보았나?
우리의 언론은 생각보다 사건의 모든 정황과 전말을 자세히, 정확히 전달하지 않는다.
이를 보고 섣부른 감정이 아니었는지 검토해보았는지 되묻고 싶은 질문이다.
몰랐는데 해당 30개의 질문은 5개씩 각각 안정성, 다양성, 인정, 소속감, 성장, 기여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이는 한 개인을 움직이게 만드는 6가지 욕구라 하는데
상위 두 가지가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고 한다.
사실 이 질문들은 나에게 다소 난해하고 굳이 싶은 질문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로 써내려가보니
생각이 좀 정리 되는 것 같다.
이제,, 출근하러 가야지
'나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취 +7 - 자취 일주일, 느낀점 (1) | 2024.06.05 |
---|---|
Ep. 첫 출근 (1) | 2024.06.03 |
독립 3일차 후기 (1) | 2024.06.02 |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생기는 것이고, 빛이 있어야 어둠도 있는거야 (0) | 2023.08.04 |